언차티드 2의 '샴발라'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언차티드 1의 '엘도라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에스파냐어에서 El은 정관사, Dorado는 '황금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알려진 엘도라도의 뜻은 '황금향', 즉 '황금으로 가득한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원래 엘도라도는 '금으로 입힌 자'라는 뜻을 가진 남아메리카의 전설 상의 왕을 가리키는 용어였습니다.
실제 역사에 근거한 이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면...
치브차 시대 이전에 '금으로 입힌 자'가 산타페 데 보고타 뒤에 있는 콜롬비아의 과타비타 호수 주변 지역의 새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즉위를 기념하여 호수의 신에게 황금을 바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사제들에게 자신의 몸을 금가루로 도금하도록 한 후 호수 한 가운데에서 물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호수의 신이 금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의 몸에 묻은 금가루를 모두 씻어냈다고 합니다.
에스파냐(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잉카 제국 주변의 모든 부족들이 그들에게 이러한 엘도라도의 전설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잉카 주변 부족들이 잉카의 대도시를 보고 퍼진 이야기인 것으로 추측됩니다만...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잉카를 정복한 후에도 자신들이 있는 곳이 전설의 왕국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황금을 찾아 산악과 밀림 속을 계속 휘젓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잉카의 어느 도시에 황금의 엘도라도가 있다'에서 '황금 도시 엘도라도가 잉카의 어딘가에 있다'로 변형되어 버린 것이죠.
게임 상의 엘도라도
황금도시를 찾는 다른 매체에 비하면 나름 실제 의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듯...
그리고 '발베르데의 보물' 같은 실제로 황금을 찾아낸 사례도 있어서 엘도라도를 찾는 침략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1584년에 후안 발베르데라는 젊은 병사가 원주민 처녀와 사랑에 빠져서,
안데스 산맥 높은 곳에 위치한 그녀의 고향마을로 함께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3년 후에 에스파냐 순찰대가 그 곳에 도착할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았으나,
이후 탈영병으로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한 발베르데는 아내와 함께 에스파냐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을의 장로들은 그들의 여행을 도와주기 위해 잉카의 루미나우이 장군이 황금을 숨겨둔 곳을 가르쳐 줍니다.
그 황금을 찾으러 떠난 발베르데는 3주 후에 황금 콘도르를 비롯한 많은 보물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거대한 황금 콘도르의 눈은 에메랄드였고, 활짝 펼친 거대한 날개는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을의 촌장은 유럽인들이 물러나고 잉카 제국이 재건될 때까지 황금 콘도르는 계속 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 외에 다른 보물들도 많이 가지고 돌아온 발베르데는 두 말 없이 황금 콘도르를 원래 자리에 돌려 놓았다고 합니다.
잉카, 그리고 거대한 황금 콘도르...하면 떠오르는 '태양소년 에스테반'.
1982년작이고 국내에서는 MBC에서 1987년에 방영했었죠...
'동서남북 힘차게 달려가자~ 태양소년 에스테반~' 하는 김국환씨의 주제가가 아직도 머릿 속에 남아있네요...^ ^;
문맹이나 다름없던 발베르데가 금으로 된 보물 수십 가지를 가지고 에스파냐로 돌아가자,
당시 국왕이었던 카를로스 5세는 그 보물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모두 몰수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발베르데가 설명한 내용을 기반으로 '발베르데의 보물'이라는 문서가 작성됩니다.
현재까지도 완벽한 상태의 사본이 남아있는 이 문서에 따르면...
거대한 황금 콘도르를 비롯한 많은 보물이 양가누티 산맥의 인공호수에 숨겨져 있고,
이 문서에는 그 인공호수로 가는 길이 아주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카를로스 왕은 그 호수를 찾기 위해 여러번 원정대를 보냈지만, 모두 날씨와 굶주림과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 실패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헬기 등을 동원한 수색이 여러 차례 이루어졌지만,
짙은 안개와 높은 고도, 산악의 궂은 날씨 때문에 아직까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고 합니다.
잉카 제국의 마지막 잉카(잉카는 제국의 이름이자 왕의 칭호이기도 했습니다)인 아타우알파는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함께 찾아온 168명의 정복자들을 경계하지 않고 있다가 그들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아타우알파는 자신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카하마르카의 요새에 있는 방 하나를 키높이만큼 은과 황금으로 가득 채워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 조건대로 아타우알파는 많은 황금을 정복자들에게 주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는 커녕 정복자들의 욕망에 불을 지피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아타우알파가 정복자들에게 준 황금은 그들에게 잉카에 얼마나 많은 황금이 있는지를 보여주었을 뿐이었으니까요.
정복자들은 아타우알파를 교수형에 처한 후, 잉카를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과 황금을 키높이 이상으로 채웠다는 45제곱미터(약 14평) 크기의 '금과 은의 방'
(지난 2009년 전남 영광에서 열린 '나스카 잉카문명 테마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에 관련된 전설같은 이야기 중 하나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은과 황금에도 불구하고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더 많은 보물을 요구했고,
이에 왕비는 왕을 구하기 위해 잉카 전역에서 황금을 더 모으게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인 황금을 정복자들에게 가져다 주려는 차에 아타우알파가 처형당하고,
이 소식에 화가 난 왕비가 황금이 정복자들 손에 넘어가지 않게 숨기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페루 어느 곳에 황금이 잠들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사실 잉카인들에게 황금은 전혀 '귀중품'으로서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잉카 사회는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기본으로 하는 공산주의 사회였다고 합니다.
수확한 작물은 한 곳에 모아두고 공평하게 나눠 먹었다고 하고, '화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황금은 다른 사회에서처럼 '사치품' 혹은 '귀중품'으로서의 의미를 전혀 갖지 못했고,
그저 '태양의 땀'으로 여겨져 신전이나 제기, 장신구 등을 장식하는데 쓰였을 뿐입니다.
...그런 물건을 뭐 소중하다고 굳이 숨겼을까요...;;
'샴발라'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황금이나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은 거의 서양인들의 망상의 산물일 뿐입니다...
대제국 잉카가 200명도 안되는 에스파냐 침략자들에게 멸망한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정복자들이 가지고 온 천연두 등의 질병에 면역이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는 의견이 현재 대세이긴 합니다만...
그 외에도 에스파냐의 총기를 비롯한 철제무기의 힘이었다는 의견,
창백하고 수염을 기른 에스파냐인들의 모습이 잉카의 창조신인 비라코차와 닮았기 때문에
그들을 '신의 사자'로 생각해 저항하지 못했다는 의견 등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잉카 뿐만 아니라 아즈텍, 마야 등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문명에도
공통적으로 '창백하고 수염을 기른 신'과 관련된 신화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라틴아메리카는 유럽인들의 침략에 대해 별다른 저항이 없이 정복당하게 되었습니다...
잉카의 창조신 비라코차
손에 번개를 들고, 머리에는 태양의 왕관을 쓰고,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턱에는 턱수염이 있습니다.
항상 깨끗하게 면도를 하는 잉카인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지요.
(지난 2009년 전남 영광에서 열린 '나스카 잉카문명 테마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게임에서 엘도라도 안에 안치되어 있는 미라
이 미라가 황금으로 된 관에 들어있으니...나름 '금으로 입힌 자'의 의미에도 부합하는 듯 하네요.
잉카인들은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어 두고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대했다고 합니다.
이는 왕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왕이 죽으면, 신하들은 그를 미라로 만들고 살아있을 때와 같은 지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계자는 자신의 새로운 궁전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 때문에 끊임없이 정복전쟁이 벌어졌고...
이것이 잉카가 짧은 기간에 큰 제국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왕의 미라는 계속 왕으로 대접받으며 매일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미라의 말을 통역하는 관리도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잉카의 전통이었던 미라는 에스파냐 정복자들의 카톨릭 전파와 함께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파괴당했고,
지금 남아있는 미라는 해안지방이나 산악지방에 묻혀있던 것 뿐이라고 합니다.
1999년에 아르헨티나 유이야코 산에서 발견된 소녀의 냉동미라 안데스 산맥의 얼음속에서 발견되어 가장 완벽한 보존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견된지 약 8년이 지난 2008년에 일반에 공개 되었습니다.
현재도 잉카의 후예들은 미라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음식을 갖다주고 옷을 갈아입힐 뿐만 아니라, 인사도 하고, 말도 걸며, 머리도 빗어준다고 합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엘도라도'를 '황금도시'로 생각하고 찾아나서는 내용을 다룬 다른 매체에 비하면,
언차티드 1의 '엘도라도'의 재해석은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다만............
...이것만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저 '신에게 황금을 바치기 위해서' 몸에 금을 입힌 '엘도라도'를...
게임상에서 어떻게 묘사했는지...
저 미라가 뿜어내는 연기를 쐬면 어떻게 되는지...는 게임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샴발라'에 관한 글에서도 했던 이야기입니다만...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비서양) 고대문명'은 이제 좀 그만 나와줬으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참고문헌
사라진 황금 왕국 - 잉카 신화(타임라이프 신화와 인류 시리즈), 토니 앨런 외/김석희 옮김, 이레(2009)
잉카 신화(대영박물관 신화총서), 게리 어튼/임웅 옮김, 범우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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